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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덕혜옹주 역사왜곡과 후기

♥약용식물관리사 고객센터 2016. 9. 6. 06:30

 

 

덕혜옹주 역사왜곡과 후기입니다.

 

역사가 잊었고 나라가 잊었던 조선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입니다. 이야기로만 존재하던 조선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소설에서 영화화 되었습니다. 영화가 되기전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실화적인 사실이 잘 녹아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두번째 영화가 바로 덕혜옹주였습니다.

 

감독의 인터뷰 장면을 봤었는데 얼마나 큰 고심을 했는지 느껴졌습니다. 1927년 영친왕을 망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사실이지만 그걸 진짜 실행에 옮겼다면 어땠을지 실존 인물의 팩트를 다룬 전기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픽션이 들어간 상황들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개연성있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고민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가 그 고민들 그대로 나타내줍니다.

 

그리고 예민해질 수 있는 시대인 배경을 등장시키고 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시기에 작품을 내고 그녀를 기억하게 하려는지 그게 무엇보다 궁금했습니다. 줄거리의 시작은 많은 사연을 거친듯한 노년의 한 남자가 누군가를 찾았다는 전화를 한 통을받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본을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이 60이 넘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딸 덕혜옹주는 원작 소설로도 이미 많이 알려져있는데 귀국하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아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원작과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감독은 덕혜의 결혼 생활이 아닌, 만약 이런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과 다른 픽션 부분이 많이 등장합니다.

 

먼저 주인공은 역사 속 존재한 비극적 인물입니다. 고종을 비롯해, 양귀인, 영친왕, 독립운동가 김장한, 친일파, 이완용, 수하 한택수 모두 실존에 있었던 인물은 맞습니다. 다만 역사왜곡적인 사실 부분에 대해선 픽션이 가미된 건 사실인데 대표적으로 덕혜옹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로맨스 분위기도 얼핏 느껴지던 김장한이라는 인물은 일본에게 나라를 잃어 딸까지 싫었던 고종이 조선인과 혼인을 시키기위해 찾았던 그 인물이 바로 황실의 시종 김장한이었습니다.

 

약혼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의 행방은 어떻게 된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실존했던 인물은 맞습니다. 김봉국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실존한 인물입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었고 손병희가 죽은 뒤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1926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당한 후에 5년정도 복역하고 출소했지만 3개월만에 운명한 인물입니다.

 

영친왕은 친왕이 일본식 칭호라서 영왕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고종이 황제가된 후 영친왕으로 왕후를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결혼시킨 일본 황족 출신 이방자 여사도 실존 인물입니다. 실제로도 사이가 좋았었다고 전하는데 영화에서도 부부간의 사이는 좋았던 것으로 그려집니다. 대마도 가문의 37대 당주이며 일본에서 강제 결혼을 시킨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도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그 외에도 픽션으로 만들어진 복동, 복순이라는 그 역할의 인물은 당연히 있을 것 같아서 문제는 되지 않을듯 합니다. 배우 고수가 특별 출연했는데 역사적 인물 이우 왕자 와 싱크로율이 놀랍습니다. 이우 왕자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5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처남입니다. 일본의 강요로 일본인과 결혼할 뻔 했으나 조선인과 혼인하기 위해 저항하여 박영효의 서손녀 박찬주와 결혼했고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 폭탄에 피폭되어 사망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는 실제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를 일본화 시키기위해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던 왕족들과 정약 결혼을 감행했는데 그 중 덕혜옹주도 포함되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정신병이 있었다고하는데 자료가 부족하여 그 사실이 정확하진 않지만 스시마섬 도주의 후예 소 다케유키라는 일본인과 강제로 정략 결혼을 시켰고 백성들은 분노하여 신랑의 얼굴을 삭제한 결혼식 사진을 실어 민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딸 정혜를 낳기도 했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일본인 남편 다케유키의 동정론도 있는듯 하지만 한 나라의 오주로서 남의 나라로 끌려가 그 나라 사람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그녀에게 행복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덕혜옹주에게는 그 자체가 치욕이었을겁니다.

 

그 시대에 살아있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듯이 덕혜옹주 본인에게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뜻이건 아니건 어쨌든 다키유키와 이혼을하고 딸 정혜 또한 실종이되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1945년 광복이후 흐릿한 정신소개서도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덕혜옹주는 그 당시 정치적 부담감을 느낀 정부때문에 발길이 묶이고 38년만인 1962년 겨우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광복한지 17년 후에서야 자신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영화속 장면중 입국 거부를 당한 장면 다음, 한택수와 마주치며 나눈 대화들 거의 덕혜옹주가된 기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으며 미칠 수 밖에 없던 제정신일 수가 없는 그 장면 물론 픽션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나라를 팔았던 인간들이 광복후에 다시 잘 적응해서 잘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극도의 분노감을 느끼던 장면이었습니다.

 

역사적이 고증부분으로 파고든다면 할말이 많은 영화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고증부분보다는 진정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했을만한 암울한 시대에관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왜 독립운동과 관계없는 인물을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처럼 다뤘냐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독립운동 그리고 암울한 시절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가 핍박 받으며 살았던 우리 민족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실제 사건의 진위가 아니라 바로 가슴아픈 부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따지고보면 지금와서 덕혜옹주라는 인물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잘먹고 잘살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당시 고종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루머가 퍼졌을 때 그 사건은 3.1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은 시대가 다르지만 선진국인 영국을 보더라도 엄청난 특권을 가진 여왕이있고, 일본같은 경우 그들이 천왕이라고 부르는 일왕이 있습니다. 한나라에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존재의 가치는 절대적입니다. 또한 공통적인 특징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도 덕혜옹주는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이되었고 지금의 아이돌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말은 국민이 아닌 백성들이 살아가기에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하고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논리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는 덕혜의 개인사, 덕혜라는 인물에 중점을 두고 봐야한다는 중점도 있겠지만 그렇게 본다면 왜 굳이 그런것까지 알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덕혜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가치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당시 시대속에서 가치적인 존재인 인물의 안타까운 비극사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상황들을 함께 느끼는 영화라는 생각됩니다.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 푸이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1908년 어린 나이인 3살에 직위했다가 단 3년만에 퇴의했습니다.

 

갑자기 영화를 보다가 푸이가 생각난건 경복궁을 뛰어다니는 어린 덕혜의 모습에서는 자금성을 뛰어가는 어린 푸이가 생각났고, 덕혜옹주 마지막 장면에서는 푸이가 자금성 옥좌에 앉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유사성과 청황의 마지막 황손 푸이,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의 비운의 삶에서는 많은 부분이 닮아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황제는 전혀 다른 감동을 주긴하지만 말입니다.

 

아쉬운 부분은 그녀를 그토록 핍박하고 힘들게 했던 실체의 모습이 너무 약하게 비춰진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시대 사람들이라면 그걸로도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지금 시대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설명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으며 컷당한 장면도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잊고있었던 많은 인물중 하나인 덕혜옹주가 왜 지금에와서 다시 생각을해야하고 기억되어야하는지 영화를 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물론 그녀는 독립운동가나 영웅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분명히 이영화 그냥 넘기기엔 아깝습니다. 충분히 역사적인 고증을 마치고도 잘 만들수 있었던 영화가 있고, 역사적인 사료가 다소 부족함에도 시도한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덕혜옹주 역사왜곡과 후기를 마치며 이미 세상에서는 사라져간 인물이지만 살아생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는은 아직도 잊혀지지않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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